[산사기행] 마니산 정수사

입력시간 : 2019-09-10 12:32:48 , 최종수정 : 2019-09-10 12:33:09, 전승선 기자





마니산 정수사

 

바다, 미칠 듯이 그립다. 바다는 나에게 강자다. 넘어설 수 없는 갑이며 존재의 중심이다. 바다를 향한 나의 짝사랑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욕망덩어리지만 때론 실용적이며 따뜻하다. 바다는 무겁고 거추장스런 대승을 닮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소심하고 살가운 소승을 닮았다. 팔월의 바다를 향해 강화대교를 건너면서 나는 바다가 거기 있어서 고마웠다. 지척에 둔 서울을 향해 언제든지 손짓을 하면 한밤중에도 달려 갈 수 있을 것 같은 그 바다를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팔월의 태양은 산산이 부서지고 바다는 꿈결처럼 일렁이며 나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나는 바다와 한편이 되어 정수사를 안고 있는 마니산으로 향했다.

 

여름휴가를 코앞에 둔 강화도는 이미 사람들 천지가 되어 있었다. 밀물처럼 몰려들었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자동차들의 뒤꽁무니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았지만 정수사 입구를 찾지 못했다. 모두들 바다를 찾아 앞으로만 달려가는데 산을 찾아 가는 이는 나밖에 없었다. 켜 놓은 내비게이션도 더위를 먹었는지 제 임무를 하지 못하고 버벅대고 하필 이정표까지도 신경질을 부리며 제멋대로 알려주어 몇 번이나 가던 길을 다시 갔다가 되돌아 왔다를 반복했다. 괜찮다. 다행히 나는 서울을 일찍 출발하여 도착한 강화도는 아직 아침 무렵이었고 충분히 시간은 내편이었다. 그러니 서두를 것도 조바심 낼 것도 없었다. 미칠 듯이 그리웠던 바다가 눈앞에서 충만한 그리움으로 찰랑대며 나를 위로해 주고 있으니 길 하나 못 찾는 게 대수겠는가.

 

바다가 문제다. 고립으로부터 나를 구해낼때마다 바다가 문제였다. 철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찾아왔던 강화도의 바다는 감각의 해체를 요구했지만 나는 더욱 견고하게 감각의 영토를 넓혀갔다. 강화도 구석구석에 발자국을 찍으며 청춘을 보냈고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십을 넘어 바다처럼 늙어가고 있다. 늙음은 잘못이 없다. 바다도 잘못이 없다. 세상은 좀 더 자극적인 사상이 유행하고 그 유행에 지친 사람들은 정신적 거처를 찾아 여행이라는 천국에 유폐되어갔지만 나는 여전히 바다에 귀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나의 관념은 절대적으로 바다라는 하드웨어를 넘지 못했다.

 

바다로부터의 감각을 생각하면서 나는 겨우 찾은 마니산 초입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바다를 앞에 둔 정수사의 길은 다정했다. 실없는 투정도 다 받아주는 사람 좋은 선배처럼 말이다. 가지런히 피어있는 여름 꽃들이 바람에 한들거릴 때마다 생각 속에 숨어 따라온 관념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관념을 버리고 나니 한결 가벼워졌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소리에 귀를 기우리자 애지중지 품고 있던 감각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사라지더니 발걸음은 어느새 정수사 대웅전 앞에 멈춰 서 있었다.


꽃보다 함허

 

첫 법명은 수이守伊, 법호는 무준無準, 법명은 기화己和, 당호는 함허涵虛라고 하는 그는 꽃보다 함허다. 이렇게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다 그만두고 단지 꽃보다 함허다. 마니산 정수사에서는 그렇다. 아니, 정수사 마니산에는 그렇다. 고려에서 태어나 조선에서 함허가 된 그는 무학대사의 제자로 스물여덟에 크게 깨우치고 오도송을 읊었다 하니 꽃보다 함허인건 맞는 말이다. 신라의 절 정수사에서 함허를 만나고 나니 마니산이 보였다. 마니산 정수리를 감고 있던 여름구름도 보였다.

 

나는 함허의 품에 안긴 채 대웅전에 앉아 명상인지 졸음인지 분간 할 수 없는 깊은 곳으로 침잠해 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달려와서 그런지 피곤이 엄습해 왔고 그 피곤을 핑계 삼아 명상 속으로 피난을 갔지만 이내 나직하게 들려오는 염불소리에 놀라 명상 속을 기어 나오고 말았다. 작은 체구를 지닌 비구니 스님이었다. 참 염불 잘하신다. 비구니 스님의 염불소리에 나는 아마 비구니 스님보다 먼저 부처에게로 닿을지 모른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한때 나는 비구니 스님을 보면 어떤 연유를 가지고 스님이 되었을까 하는 연민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명쾌하고 아름다운 삶을 나보다 일찍 알았을까 하고 부러워한다. 정수사 비구니 스님의 염불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저 스님의 청량하고 단아한 삶이 부러워진다. 부러우면 진다는데 나는 이미 지고 말았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나는 게 인연 아니던가. 마니산 정수사의 여름 꽃들은 피었다가 지고 지었다가 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고요는 마당위로 켜켜이 쌓여가고 햇발은 두껍게 내려 덮는데 노란상사화가 절집을 뒤덮고 있었다. 꽃과 잎은 서로를 두고 사랑하나 도저히 만날 수 없어 상사병에 걸렸다는데 오늘도 애처로운 전설만 무성하게 품고 있는 상사화를 바라보면서 사람이나 꽃이나 사랑은 다 아픈 것이기에 위대하고 슬픈 것인가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은 절집에도 피고 저잣거리에도 피고 고대광실에도 피는가 보다.

 

나는 더위를 피해 늦은 밤까지 정수사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다 마니산 머리위로 하얗게 내리는 섬 안개를 만났다. 안개는 처녀의 뽀얀 속살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절집 개가 컹컹 짖어대는 소리가 마니산을 휘감고 안개는 아이스크림처럼 차갑고 달콤하게 나를 품어주었지만 다시 세상의 길로 내려와야 하는 내 자신의 처지를 깨달으며 속세도 살만하다고 스스로 위로해야 했다. 위로가 아니라 위증일지 모르지만 아무렴 어떠랴. 산속도 사람 사는 곳이요 산 밑도 사람 사는 곳이니 마니산 정수사에서의 하루가 천년에 비할 바 아니다. 그래, 미칠 듯이 그리웠던 바다, 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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